그룬트비 (N.F.S. Grundtvig)
니콜라이 그룬트비 (1783–1872, 덴마크의 신학자이자 저술가)에 의하여 대중교육 (popular education)이 덴마크 전통에서 삶에 대한 학습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게 되었다. 그룬트비는 다른 저명한 덴마크인 키르케고르와 안데르센과 함께 더불어 동시대에 살았다. 두 사람 모두 세계에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덴마크 사람에게 있어서 덴마크 문화에 지워질 수 없는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장본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니콜라이 그룬트비이다.
물론 그룬트비가 살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덴마크의 전반적인 삶, 문화 환경, 교회, 교육 시스템, 정치 문화, 분위기와 마인드 자체 전반이 모두 지금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아마도 지금처럼 유쾌하거나 흥겹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룬트비는 살아있는 역설이며 모순으로 가득 찬 남자였다. 그는 종종 매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만약 현대였다면 ‘조울증’으로 진단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시와 거대한 비전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영감을 얻을 때면 그는 꽤 오랫동안 미친듯한 속도로 잠을 자지도 않고 일할 수 있었다. 또한, 덴마크 역사상 그는 가장 다작을 많이 남긴 작가로 인정을 받기도 하는데 모순적인 것은 그가 끊임없이 언급했던 테마가 쓰인 언어가 말 또는 ‘살아있는 언어’(living word)보다 열등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에 걸쳐서 그는 뜨거운 정치적 현안에서부터 영원에 대한 질문까지 인간의 존재를 건드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하여 강연하고 글을 남겼다.
유년시절 그룬트비는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삶은 일종의 일시적 추방과 같은 일시적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인간의 필수 과제는 죽음 그 너머에 있는 ‘영생’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40대 후반이 되는 1829년에서 1831년 사이 영국으로 세 차례에 걸쳐 유학을 떠나는데 이는 그의 인생에 여러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 중 하나는 그에게 삶과 세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덴마크 시민대학 설립을 이끈 기본적인 교육학적 아이디어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의 영국 유학의 원래 목적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도서관에 보관된 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의 원고를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케임브리지에 있는 동안 그는 트리니티 대학 (Trinity college)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는 교수진과 학생들 사이에 있는 특별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교수와 학생들은 수업 시간 외에도 일종의 공동체로 함께 살았는데, 그들은 함께 식사하고, 운동하고, 차를 마시며 토론을 즐기고는 하였다. 학생들은 교수들의 지식과 학문의 깊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특이한 점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룬트비를 놀랍게 한 것은 교수진 역시 학생들에게 비슷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그룬트비가 겪은 덴마크 교육 시스템에서 경험과 크게 다른 지점이었다.
1830년 그룬트비가 영국에 두 번째 방문하였을 때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큰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으나, 학문적으로 그리고 심정적으로 이는 거대한 심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는 덴마크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는 1830년 6월 24일이다. 저녁 파티에서 그룬트비는 의사의 젊은 아내인 클라라 볼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건은 바로 이 두 사람의 대화에 있다. 저녁 만찬 내내 그룬트비와 클라라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긴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 자정이 넘어서자 걱정이 된 주최자가 클라라에게 왜 대화가 이렇게 길어지는지 묻자 그녀는 답한다. “그룬트비와 제가 대화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 이후로 그 두 사람은 다시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똑똑하고 매력적인 그녀와의 대화는 그룬트비에게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주술에 걸린 듯했다. 14년 후에도 그는 ‘그리스의 여인’이라고 그녀를 명명하며 놀라웠던 대화를 회고했다.
클라라의 이상향은 영원한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처럼 인생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행복과 고통을 그저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있었다. 그녀의 개인적 성격과 철학은 그룬트비의 인간 존재에 대한 시각과 종교관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이후 그는 기독교의 목적을 아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목적은 세상에서 인간을 구원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우리의 삶을 위하여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속의 삶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련과 과정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여 선과 악을 포함한 모든 삶의 면면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에 있었다. 그는 인간의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귀중한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은 덴마크 정부기관에서 펴낸 영문자료를 번역한것입니다.
The Danish Folkehøjskole
The pamphlet “The Danish Folkehøjskole” (2016) gives an introduction to the Danish Folk High School. Original text by Jørgen Carlsen and Ole Borgå, updated by Arne Andrésen, Sigurd Kværndrup and Niels Gl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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