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적 뿌리

2장 교육적 뿌리


개별 폴케호이스콜레는 자체적인 교육학적 접근법을 개발하는 데 전적으로 자유롭지만, 폴케호이스콜레의 선구자 니콜라스 그룬트비의 교육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에 교육 실천의 토대가 되고 있다.

역사적 맥락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의 핵심 사상과 본래의 목적은 폴케호이스콜레의 창시자이자 덴마크의 성직자, 찬송가 작곡자, 역사학자, 교사, 언어학자, 교육학자, 그리고 덴마크 최초의 헌법 시대에 활동적이었던 정치인 니콜라스 프레데리크 세베린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의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C. Andersen)과 실존주의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가장 유명한 덴마크인이지만, 덴마크 사회에 가장 광범위한 영향을 준 사람은 그룬트비일 것이다. 그룬트비는 현재 덴마크 낭만주의 운동이라고 불리는 움직임을 이끌었는데, 이 운동은 더 광범위한 유럽 민족 의식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다.


덴마크가 1849년에 민주주의 헌법을 채택하기 전, 사회는 계층적이며 대부분 가부장적 노선을 따라 작동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상급자에게 종속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모든 사람은 주인이 지배하는 가족에 속해 있었으며, 상사, 영주의 주인, 공작 또는 왕에게 봉사했고, 하나님을 최고의 능력으로 섬겼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 방식은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의 움직임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인간이 인간의 독립성과 자유, 그리고 소외를 발견한 것이다.


1848~50년 독일 연방의 지원을 받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과 덴마크 사이의 전쟁(1864년 최종 중단)은 덴마크 면적의 40% 손실과 부의 감소를 초래했다. 그러나 덴마크는 헌법의 형태로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음으로써 이러한 도전에 대응했다. (1849년) 또한, ‘자유’ 초등학교(“free” primary school) 제도를 확립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도를 발전시키기도 했는데, 그중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는 가장 중요한 학교였다.


그룬트비는 전 생애에 걸쳐 기독교와 인간 존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바꿨다. 인간의 본질적인 과제는 지상에서의 삶을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며, 인간의 죽음을 넘어선 ‘영생’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시각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그룬트비는 더 이상 기독교의 임무를 지상에서 존재의 시련 및 환난에서 사람들을 해방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지상에서의 삶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게 돕는 것으로 보았다. 덴마크 사회의 여러 지정학적, 문화적, 역사적 변화와 함께 일어난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교육에 대한 그룬트비의 사상을 형성했다. 그룬트비는 모든 사람들이 사회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면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그들의 역사, 언어 및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룬트비의 삶을 위한 학교


그룬트비의 주요 전환점 중 하나는 영국으로 여행을 간 시기였는데, 그룬트비가 캠브리지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 머물 때였다. 그룬트비는 그곳에서 매우 편안함을 느꼈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형성된 유대감 있는 분위기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수업과 강의 외에도 공동체로 살았다. 함께 식사하고, 축구를 하고, 오후에 차를 마시면서 토론을 했다. 그룬트비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상호 존중과 비권위적인 관계를 보고도 큰 영감을 받았다. 이는 당시 덴마크식 교육을 받은 자신의 경험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1830년대에 그룬트비는 영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인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룬트비는 공립 학교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의 생각에 공립 학교는 사람들의 실제 삶을 기초로 삼기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성서 연구와 같은 “죽은 지식”을 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사람들은 삶과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알고, 함께 생각하며 다른 사고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평생 지속되어야 할 태도라고도 했다.


이해와 수용에 대한 강조는 대다수 국민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덴마크는 국가 교육과 ‘자유’ 학교 교육을 경쟁자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 간주하는 독특한 이중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늘날까지 자유 학교와 공립 학교는 상호 보완적인 시스템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종종 상호 지원 시스템으로서 기능한다.


덴마크의 ‘자유’ 학교 시스템


덴마크 법률은 의무 교육은 규정하지만 의무적인 학교 출석은 규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부모에게 자녀를 홈스쿨링할 권리가 있지만, 기존의 교육 시스템의 대안으로 소위 ‘자유 학교’를 시작하는 강력한 전통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 자유 학교도 법률로 정해진 일정한 기준에 부응해야 하지만, 중앙이나 형식적인 자격 요건이 없는 직원을 자유롭게 임용하고,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대로 재원을 배치해 학비를 결정하고 국고 보조금을 받기도 한다. 또한, 자유롭게 커리큘럼을 배열할 수 있고, 그들이 선택한 과목에 중점을 두며, 자신만의 교수법을 채택하고, 시험을 치르지 않고 평가를 수행할 수 있다.


덴마크의 자유 학교는 다음을 포함한다.

- 초·중등 자유 학교

- 애프터스쿨(15~16세)

- 폴케호이스콜레(17.5세 이상)

- 자유 학교를 위한 독립 아카데미 교직(교사 양성)


주요 교육 개념


그룬트비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폴케호이스콜레의 사상적 아버지였다. 그의 교육 사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천되었고 많은 교육가들에 의해 진화되었는데, 크리스튼 콜(1816-1870)은 이러한 교육가 중 한 명이다.


다음은 그룬트비 교육 사상의 필수적인 측면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가르침은 삶을 깨우쳐 주는 것이어야 한다(Teaching must be life enlightening).


모든 가르침의 목적은 학생들이 그들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룬트비는 “개인의 깨달음(자각)을 통해 인간 삶의 신비가 서서히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계몽적이고 활기차며, 사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배움이 있는 곳이다.


가르침은 반드시 대중의 깨달음이 되어야 한다(Teaching must be people’s enlightenment).


폴케호이스콜레의 교육 목표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부분, 즉 사회의 일부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그룬트비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교육이라고.


교육은 전체 인간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Teaching must aim at educating the whole human).


그룬트비 시대 학습의 가장 큰 특징은 암기였다. 학생들은 암기를 하고 교사 앞에서 그대로 반복하고 암송해야 했다. 이는 커리큘럼 및 시험 중심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지능만 고려하는 학습법이었다. 그룬트비는 지성만큼 상상력과 감정을 중요시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해, 몸과 정신 모두를 중요시하는 학교를 꿈꾼 것이다.


학교는 깨달음과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The school has to enlighten and enliven).


학교는 반드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해야 하지만, 학생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룬트비에게 이것은 학생들이 현재 그들의 삶을 즐기면서 동시에 바뀌어야 할 것을 바꿀 용기를 찾는 것을 의미했다. 그룬트비는 또한 어떤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했다. 교육을 학생 자신의 삶과 연관시킴으로써, 학생은 자연스럽게 그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키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폴케호이스콜레에서의 가르침은 반드시 살아 있는 말(living word)에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Teaching at a folk high school must attach importance to the living word).


이것은 말 그대로 대화가 최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룬트비 시대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책은 수업의 주요 도구다. 그룬트비는 책을 말과 경험으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깨달음보다 먼저 온다(Life comes before enlightenment)."는 말도 그룬트비의 말이다.


학교의 가르침은 반드시 역사적이고 시적이어야 한다(The school’s teaching must be historical-poetical).


요컨대 교육을 통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역사(역사적)를 인식하고, 시적인 것(시에서 창조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미래의 삶과 사회를 위해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신화와 시가 이를 열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학교는 살아 있는 상호 작용이 되어야 한다(The school has to be a living interaction).


이것은 분명 그룬트비의 주요 교육학적 개념 중 하나일 것이다. 일상에서의 상호 작용은 반드시 교사와 학생 사이의 함께함에서 나타나야 한다. 교사와 학생은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들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인생에 대해 배울 때 평등하다. 교사는 그런 의미에서 전문가이면서도 학생과 관련된 개별적인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학습 기간은 청년기이다(The most important learning period is the youth).


그룬트비는 이와 같은 교육이 어린 시절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성인 교육이었고, 아동 교육에는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 그룬트비에게 있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학습 기간은 성인기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이 시기에 사람의 관심은 외부로 향하며, 사람은 여전히 꿈을 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