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자유학교의 역사

1849년 덴마크가 민주 헌법을 채택하기 전에, 사회는 계급적이고 가부장제적이었다. 시민은 상급자에게 종속된 것으로 자연스럽게 간주하였다. 모든 사람은 주인에 의해 지배되거나 가족에 속한 존재였고, 그 가족의 주인은 그의 상급자, 토지주인, 혹은 공작이나 왕을 위해 봉사했다. 물론 궁극적으로 모두 신을 위해 봉사하였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19세기 유럽을 휩쓴 혁명으로 무너졌다. 인간은 그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소외를 발견하였다.

1848–50년 덴마크와 독일 연방의 지원을 받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Schleswig-Holstein)과의 전쟁은 최종적으로 1864년 덴마크의 면적과 부가 40% 줄어드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덴마크인들은 이 같은 도전적인 상황에 대하여 헌법 (1849년)의 형태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유로운 초등학교 제도를 확립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관, 에프터스콜레와 폴케호이스콜레를 설립함으로써 대응했다.

유럽의 국가의식은 오늘날 우리가 ‘낭만주의 운동’이라고 부르는 형태로 깨어났다. 덴마크에서는 신학자이자 시인, 언어학자인 그룬투비(N.F.S Grundtvig, 1783–1872)가 이 운동을 이끌었다. 그와 크리스텐 콜드(Christen Kold, 1816–1870)는 공교육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공교육이 가르쳤던 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지식과 같은 ‘죽은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들은 삶에 대하여, 그들이 사는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다른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깨우쳐야 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은 유년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평생 지속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와 수용에 대한 이와 같은 철학은 대다수의 덴마크 시민들에게 공명을 일으켰다. 이에 결과적으로 덴마크는 국가 공교육과 ‘자유학교’ 교육이 경쟁이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 공존하는 독특한 이중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자유학교와 공교육은 상호 보완적인 시스템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룬트비(Grudtvig)와 콜드(Kold)가 반대한 것은 학과목뿐만 아니라 교수법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르침의 출발점은 권위에 의하여 미리 결정지어진 교과서가 아니라 학생이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학생의 상상력과 이해를 자극하는 열쇠는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에 있다고 보았다. 그룬트비는 ‘살아있는 말(Living word)’ 그리고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소통에 막대한 중요성을 두었다.

그룬트비와 콜드 모두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을 학생의 상상을 일깨우고 북돋우는 교수 방법으로 자주 이용하였다.

그룬트비와 콜드의 학교 (그리고 교회)에 대한 비판이 꽤 급진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덴마크인은 그들을 지지했다. 이 덕분에 1855년 덴마크 의회가 모든 어린이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하는 법률을 통과했을 때 그 교육이 반드시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많은 부모가 자녀를 집에 두고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교육을 받게 하였지만, 1852년 자유학교가 설립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자유학교가 설립되었다. 자녀들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든 자유학교에서 교육을 받든 그들의 교육과정은 공무원에 의하여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되었다.

자유학교는 진보주의적 철학에 부합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하였다. 덴마크의 일부 지역에서는 경건주의의 한 형태로 개인의 종교적 각성에 집중하기도 하였다. 어떤 학교들은 개인 결단의 자유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였다. 학교는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재능, 관심사 및 자질을 양성해야 한다. 학교는 삶에 대한 학습과 가장 넓은 의미로서의 자기 계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며, ‘공동’의 의미로 생활하는 법을 배우도록 도와야 한다.

1860–80년 이후 20년간 프리스콜레(Friskole) (이하 자유학교)는 두 가지 새로운 유형으로 확장되었다. 에프터스콜레라고 불리는 기숙학교에서는 15~18세의 청소년들이 1년을 교육받고, 폴케호이스콜레 에서는 18세 이상의 성인이 일주일에서 9개월 기간 동안 국가에서 보조를 받는 코스를 수강한다. 콜드와 그룬트비는 청소년이 집을 떠나 교육을 받는 이상적인 나이가 언제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달랐다. 콜드는 18세 이전이 이상적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그룬트비는 18세 이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1949년 울러룹(Ollerup)에 자유학교, 에프터스콜레 그리고 폴케호이스콜레의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이것은 이와 같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자유학교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그 전통 안에서 어린이, 청소년 및 성인을 가르칠 수 있도록 요구되는 기술이 정상적인 교사 양성과정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자유학교의 공통 원칙

(Common principles for free schools)

자유학교는 법률이 지정한 아래와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정식 혹은 공식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직원으로 임명할 수 있다.
  • 누구든 학생으로 받아들이거나 제외할 수 있다.
  • 재정자원을 배치하고, 학비를 결정하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 수업내용을 결정하고 그들이 선택한 주제 분야에 중점을 둘 수 있다.
  • 자신만의 교수법을 채택할 수 있다.
  • 시험과 테스트 없이 학생의 평가를 수행할 수 있다.

그룬트비와 콜드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자유학교 대다수는 공통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아래 내용은 교수법의 필수 원칙이다.

  • 살아있는 언어에 중점을 둔다.
  • 교육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공유하고 있는 역사에 익숙해지고, 우리 삶의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해 움직이게 된다.
  • 학교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살아 숨 쉬는 교환 작용이다.
  • 학교는 계몽적이며 동시에 생기를 준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또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교육이다.
  • 배움에는 끝이 없다.
  • 모든 사람은 동등한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

Pamphlet published in 2016 explaining the tradition of the free schools in Denmark. Download the pamphlet The Free Danish School Tradition